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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직장에 들어가 월급명세서를 받고는 ‘멍’했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 용어들과 숫자들이 잔뜩 써있었는데, 그래서 내가 얼마를 받는다는 건지를 모르겠었다. 그래서 옆자리 대리님께 내 명세서를 보여드리며 한참을 설명을 들었다. 뭔지를 모르겠었으니까.

그런데 어제 대법원이 통상임금의 범위에 정기상여금이 포함된다는 판결을 내렸다는 뉴스가 나왔다. tv에선 통상임금 판결로 인해 직장인들이 받는 연봉이 얼마나 늘어나는지를 뉴스로 내보냈다. 그런데 난 여전히 통상임금이 뭔지를 모르겠다. 간단하게 알아본 것을 정리하는 참에 포스팅을 한다.

통상임금 vs. 평균임금

법원은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결을 내렸다. 상여금이 흔히 말하는 보너스라는 것은 알겠는데 통상임금은 뭐지?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통상임금의 정의는 이렇다.

통상의 근로일이나 근로시간에 대해 통상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을 말한다. 근로자에게 정기적ㆍ일률적으로 소정근로 또는 총근로에 대하여 지급하기로 정하여진 시간급금액ㆍ일급금액ㆍ주급금액ㆍ월급금액 또는 도급금액을 말한다. 즉, 소정의 근로의 양 또는 질에 대하여 지급하기로 된 임금으로서 실제 근무일수나 수령액에 구애됨이 없이 정기적, 일률적으로 임금산정기간에 지급하기로 정하여진 고정급 임금을 의미하며, 실제 수령한 임금에 구애됨이 없이 고정적이고 평균적으로 지급되는 일반임금을 의미하는 것이다.

통상임금은 기본급 + 각종 수당으로 구성된다. 기본급에 대해선 노동계나 경영자 모두 이견이 없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수당’이다.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된다는 것의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다. 기업은 ‘정기적’이란 것을 1임금 산정기간, 즉 1개월로 해석해 통상임금을 산정해왔고, 노동계에선 상여금 및 복지/휴가비 등이 정기적으로 지급되어 일반적으로 연봉으로 포함되는 만큼 통상임금 산정에 상여금 및 복지/휴가비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사가 통상임금 산정에 첨예하게 맞서는 것은 통상임금이 각종 법정수당을 계산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해고예고수당, 휴업수당, 연차휴가수당, 연장/야간/휴일근로 가산금 등은 모두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산출된다. 따라서 통상임금을 어떻게 산출하느냐가 근로자 총 급여액에 미치는 효과가 작지 않다.


그런데 통상임금과 비슷해 보이는 단어가 있다. ‘평균임금’.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선 평균임금을 이렇게 설명한다.

산정사유 발생일 이전 3월간에 그 근로자에 대하여 지급된 임금의 총액을 그 기간의 총일수로 나눈 금액을 말하며, 취업후 3월 미만도 이에 준한다. 산출된 평균임금이 그 근로자의 통상임금보다 저액일 경우에는 그 통상임금액을 평균임금으로 한다(제2조제3항)

평균임금을 산정하는 이유에 대해선 이렇게 밝히고 있다.

근로자가 정상적인 근로를 하지 않거나 퇴직을 하는 경우 근로자의 정상적인 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지급되는 통상적인 생활임금의 기준액을 말한다. 통상적인 근로를 할 수 없을 때에도 가능한 한 실제 받았던 통상적인 생활임금에 따른 근로자의 생활을 보장하려는데 제도적 취지가 있다.

통상임금이 각종 법정수당을 산정하는 기준이 된다면, 평균임금은 일반적으로 퇴직금 산정의 기준이 된다. 평균임금과 관련해서도 노사간 소송이 있었다. 국민은행의 한 지점장이 회사를 상대로 평균임금 산정에 문제가 있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의 쟁점은 직원복지연금이 평균임금에 포함되느냐의 여부였고 대법원은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즉 평균임금에 직원복지연금이 포함된다는 얘기다. 판결결과, 재산정된 평균임금이 상승했고 이를 기준으로 한 직원들의 퇴직금이 늘어났다.


통상임금과 평균임금은 비슷해 보이는 단어지만 확실히 다르다. 이에 따라 임금체계가 복잡해지고 여러가지 문제들이 지적되면서 노동경제학자들 중 일부는 ‘표준임금’을 제안하고 통상임금과 평균임금을 표준임금으로 일원화할것을 주장하기도 한다. 표준임금에 대해선 조금 더 공부해 보고 포스팅 하도록 하겠다.

통상임금 관련 논쟁의 배경

통상임금에 상여금이 포함된다는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번 통상임금 판결의 피고는 갑을오토텍이지만, 한국지엠, 금아리무진 등 현재 통상임금 관련 소송은 100여 건에 달한다.


그 중 사람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통상임금 소송은 한국지엠노조가 사측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다. 한국지엠은 2000 ~ 2002년 연봉제를 도입하면서 일률적으로 적용하던 상여금을 직원들의 인사평가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업적연봉으로 전환했다. 사측은 업적연봉과 조사연구수당, 휴가비 등을 제외하고 통상임금을 산정했고 이후 노사간 소송이 진행되어 왔다. 2011년 12월 서울고등법원 민사2부는 한국지엠 사무직 퇴직자 75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 소송에서 각종 수당, 휴가비, 개인연금보험료, 직장단체보험료 등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2년 2월에는 한국지엠지부 소속 남모씨 등 4명이 제기한 소송에서도 개인연금보조금, 휴가비, 설/추석 귀성여비, 선물비, 정기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된다고 판결했다.


한국지엠에서 통상임금을 둘러싸고 노사간 치열한 소송이 진행되는 와중에, 2013년 5월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가 이뤄졌다.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으로 화제가 되었던 그 방미다. 박대통령은 방미 중 댄 애커슨 지엠 회장을 만났다. 그는 “한국정부가 통상임금 문제를 해결해 주면 한국에 80억 달러를 추가 투자하겠다”는 말을 하고 박대통령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이고 한국 경제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다. 꼭 풀어나가겠다. 지엠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대한 합리적으로 해법을 찾아보겠다”고 대답했다. 당시 노동계에선 박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이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었다. 지엠 회장이 말한 ‘통상임금 문제의 해결’은 당연히 상여금 등의 통상임금 산정 제외일 것이고, 박대통령은 여기에 화답했기 때문이다. 노사간 소송을 진행 중인 문제이고, 최근 법원 판례들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왔기 때문에 박대통령의 발언은 삼권분립을 위협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당시 한국지엠이 노조와의 통상임금 소송에서 패소해 지급해야 할 임금은 8,140억원이었다.


5월 20일, 방하남 노동부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통상임금 갈등이 장기화하면 기업 경영과 고용창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노사정과 공익 대표가 통상임금과 관련한 실태와 문제점을 함께 진단하고 합리적인 제도개선 보완대책에 대해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모두 방장관의 제의를 거절했다. 법원의 판결이 노동계에 유리한 상황에서 노동계가 노사정 협의회에 참가할 이유가 없었다. 노동부는 그동안 통상임금 문제에 대해 별다른 대응을 보이지 않았었다. 2012년 3월, 금아리무진의 통상임금 소송에서 정기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된다는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노동부는 “섣불리 변경하면 혼란을 불러올 수 있어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랬던 노동부가 박대통령의 말에 화답하듯 노사정 협의회를 제안한 것에 노동계는 마뜩찮아 했다. 윤창중 이슈가 워낙에 폭발력이 대단해서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긴 했지만 통상임금과 관련한 논쟁이 신문지상에서 이뤄지기도 했다.


7월 26일, 서울고법 민사15부는 한국지엠 소속 강모씨 등 1,025명이 제기한 임금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업적연봉을 고정적인 임금으로 볼 수 있다고 판결했다. 1심에서 재판부는 조직관리수당, 가족수당 중 본인분, 귀성여비, 휴가비, 개인연금보혐료, 직장단체보혐료는 통상임금에 해당하나 업적연봉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 다는 판결을 내렸으나, 항소심에서 업적연봉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업적연봉이 통상임금에 포함됨에 따라 회사가 지급해야할 금액은 29억에서 82억으로 3배가량이 되었다. 물론 소송을 제기한 1,025명에 대한 것만 82억이다. 한국지엠 소속 직원이 총 1만 6,000명 가량이라니까 총 금액은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통상임금 관련 해외사례

이런 상황이 되면 우리와 비슷한 해외에선 어떻게 하고 있나를 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럴 때 참고사례로 언급되는 대표주자는 미국, 일본, 유럽(유럽국가 중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의 통상임금 관련법규를 만족스럽게 다룬 한글문서를 찾을 수가 없었다. 포스팅에선 미국과 일본의 해외사례만 다루기로 한다)이다. 그런데 각국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경영자측과 노동계의 입장차이가 들어난다.

미국

대부분의 경제지에서 미국의 통상임금 관련법은 자세히 언급되어 있지 않다. 공정근로기준법(FLSA)를 통해 통상임금을 규율하고 있다라고 짤막하게 밝힐 뿐이다. 미국의 통상임금 관련 법률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은 노동계쪽 연구기관이나 언론에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GM사의 통상임금에 관한 이중 잣대’란 이슈페이퍼에 따르면 미국은 상여금 중 일부를 통상임금에 포함한다. 미국은 상여금을 재량상여금과 비재량상여금으로 나누는데 재량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지만 비재량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시킨다. 보고서에서 밝히고 있는 재량상여금의 구제적 조건은 아래와 같다.

(1) 사용자가 그 지급을 사전에 발표, 약속, 합의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2) 지급 여부가 구체적인 기준이나 달성 목표에 연계되지 않은 것이어야 한다. (3) 상여금 지급 이유가 객관적 기준이 아니라 주관에 따라 사용자가 전적으로 재량을 갖고 결정한 것이어야 한다. (4) 재량상여금은 근로자에게 동기부여(근로 유인)의 목적으로 지급한 것이면 안 된다. (5) 근로자가 상여급의 지급 사실과 지급액을 예상할 수 있을 경우 재량상여금이 될 수 없다. (6) 상여금이 지급되는 기간의 마지막까지 그 지급금액과 사실에 관하여 사용자가 재량권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지급액과 지급 결정에 관한 재량권의 동시 충족) (7) 근로자들이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그 금액에 관하여 어떠한 계약상 권리를 갖지 않은 것이어야 한다. (8) 상여금은 총임금에 추가하여 지급한 금품으로서, 고정된 정액급여에 상여금 명목으로 포함되어 있는 것은 재량상여금이 될 수 없다.

위에서 밝힌 재량상여금에 해당하지 않는 모든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비재량상여금이다. 보고서의 결론을 이렇게 내리고 있다.

결론적으로 GM사 회장은 통상임금에 대한 이중잣대를 들이대며 미국의 법에서조차 인정되지 않는 사항을 투자를 빌미로 한국 대통령에게 요구한 것이다. 따라서 GM사는 자국 내에서라면 당연히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미지급금을 하루라도 빨리 한국 GM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행위일 것이다.

일본

경제지에서 가장 길게 설명하는 해외사례는 일본이다. 일본은 노동기준법 제37조에 통상임금과 관련한 사항을 명시했는데 통상적인 임금 또는 통상적인 근로시간에 대한 임금의 일정 시행규칙을 통해 1개월을 초과하는 기간마다 지급되는 임금을 할증임금의 기초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경총이나 그 동안의 노동부 행정해석도 1임금지급기, 즉 한 달을 임금지급의 정기성을 인정하는 기준으로 사용했다.

갑을오토텍 소송 일지


이번 대법원 판결은 갑을오토텍의 근로자 295명이 사측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대한 것이다. 갑을오토텍과 관련    한 통상임금 소송은 2건이다.


  • 하나는 김모씨 개인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퇴직금 청구소송으로 쟁점은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의 여부다. 2011년 6월에 처음 소가 제기되어 2012년 2월 대전지법 천안지원은 원고패소 판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뜻)을 내렸으나 김씨가 항소했고, 같은 해 8월 2심에서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결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 두번째 건은 김모씨 등 294명이 회사를 상대로 청구한 임금청구소송이다. 이 소송은 2010년 7월 처음 소가 제기되었고, 2011년 9월 1심에서 대전지법 천안지원은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고 항소가 제기되었다. 2012년 9월, 2심에서 다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내렸다. 이 소송의 쟁점은 여름휴가비, 김장보너스, 개인연금지원금 등 복리후생비의 통상임금 포함여부였다.

통상임금 대법원 판결결과

앞서 설명한 것처럼, 2013년 7월에는 한국지엠지부 관련 통상임금 판결에서 서울고법은 업적연봉이 통상임금에 해당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경총 등은 판결에 반발하며 대법원 전원합의체를 거치지 않고 판례를 변경한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이번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판결은 대법원 전원합의체를 통한 판결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며 이를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하는 노사합의는 무효라고 판시했다. 그러나 과거에 발생한 추가임금을 청구하는 것은 노사합의 관행에 어긋나며 신의칙에 따라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기억할 것은 갑을오토텍의 통상임금 소송은 2건이었다. 각 소송의 쟁점이 달랐는데 하나는 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여부, 다른 하나는 복리후생비 등의 통상임금 포함여부였다.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으로 인정했으나 복리후생 명목 임금에 대해서는 “지급을 현재 재직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한다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언론에서는 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여부만 기사로 다루고 있으나,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2차례에 걸친 소송에서 복리후생비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판결을 뒤집고 이를 통상임금의 범위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번 판결에서 또 중요한 부분은, 그러면 이번 판결이 소급적용되어 그 동안 잘못 산정된 통상임금에 따른 회사의 미지급 임금을 받을 수 있느냐의 여부다. 임금채권의 소멸시효는 3년이다. 소급적용된다면 3년에 한해 미지급 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대법원은 “정기상여금에 대한 추가임금 청구는 신의칙에 의해 제한될 수 있다”며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노사합의의 관행에 따라 통상임금 관련 합의 부분에 대해 추가임금을 청구하게 되면 기업에 예상치 못한 과도한 손실을 끼친다며 추가임금 청구를 제한하였다.

총평

판결결과를 종합해보자면, 노동계와 사용자가 1 대 1인 상황으로 보인다.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 범위에 포함되었으나 복리후생비는 포함되지 않았다. 또한 추가임금 청구의 소급적용이 제한되었다. 노동계 쪽에서 보자면 기존의 법원 판결에서 한발 후퇴한 판결로 만족스러울리가 없다. 특히 소송을 제기한 갑을오토텍 노조는 3년치 임금 소급분 청구가 막힌만큼 ‘패소했다’고 말한다. 경영계도 만족스럽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이번 판결로 인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늘어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대법원 판결이 통상임금 범위가 확대되는 추세였고, 1,2심에서 모두 통상임금 범위에 포함되던 복리후생비가 통상임금에서 제외되었다. 더군다나 경영계에서 가장 부담스럽게 생각했던 부분은 정기상여금의 3년치 소급분에 대한 임금 청구다. 기업측에선 당장 막대한 임금 지급이 불가피한 상황이었지만 소급적용의 제한으로 당장은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경영계가 주장하는 바는 한결같다.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증가하고 투자와 고용이 축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총은 이번 판결로 인해 기업이 추가로 부담하게 될 금액이 34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노동계에 따르면 이번 판결로 인한 기업의 추가부담은 4~5조원 수준이다) 인건비 부담으로 인한 해외기업들의 엑소더스가 진행될 것이고 주장한다. 또, 기존의 노사합의에 따라 정의한 통상임금이 법정 기준보다 불리한 경우 무효라고 판정한 부분에 대해선 노사합의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반발하고 있다.


34조 vs. 5조. 누구의 숫자가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것을 판단할 만한 능력이 내게는 없다.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는 것이 경영자가 반가울리 없다. 임금이 상승하면 분명 투자와 고용이 축소되는 부분이 있다. 경총의 주장이 거짓이 아니다. 그런데 좀 호들갑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최저임금, 평균임금, 근로시간 단축, 일자리 나누기 등은 물론, 법인세, 투자세액 공제 등 모든 법안들에 대해 경영계는 늘 기업부담의 증가와 이로 인한 투자축소, 고용 감소를 근거로 내세웠다. 이 법안이 경영계의 주장과 반대로 제정되면 모든 기업이 망할 것처럼 이야기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의 대기업들은 좋은 경영실적을 보여주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한국의 모든 기업들이 망할 것이라고 했던 법안들 중 꽤 많은 수가 통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Posted by 눈감기 시워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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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트위터를 통해서 오바마 대통령이 코딩 교육을 권하는 동영상을 봤다. 오바마의 연설 솜씨가 훌륭한거야 알고 있었지만 이번 연설 역시 굉장히 좋다. 내용의 찬반을 떠나 연설 자체가 아주 좋다.


대통령이 직접 모두 코딩을 배워야한다고 말하는 게 작은 뉴스가 아니다보니 미국에선 과연 코딩교육이 그렇게 중요하고 꼭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일고 있다.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핫한 기업들은 모두 IT 기업들이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등. 그리고 이들의 성공과 더불어 스타트업이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국내산업의 보호와 국내경제 활성화에 주력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미국이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IT분야,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IT 산업의 기본이 되는 코딩을 강조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굳이 찾아보자면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움직임들이 있다. 삼성에선 ‘융합형 인재’를 강조하며 문과생을 뽑아 소프트웨어 교육을 시키고 있고, 네이버에서도 SW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의 코딩아카데미와 제휴를 맺고 한국엔젤투자협회에서 이를 한국에서 서비스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있다.(지금 서비스하고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부에서 이와 관련해 어떤 움직임이 있다는 얘기는 보지 못했다. 외려 IT분야야 관련해 기억에 남는 뉴스는 공인인증서와 관련한 논쟁들, 정부의 샵메일 추진, 신의진 의원이 발의한 게임중독법 따위이다. 이와 관련한 인터넷 여론은 하나같이 ‘그냥 정부는 가만히 있어라’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말하고 있는 동안 미국 대통령은 코딩을 말하고 있다.

Posted by 눈감기 시워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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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식 재판은 어떤 일이 일어났고 누가 행위를 했느냐를 따지지만, 나바호의 화해 과정은 그 사건의 결과를 따진다. 누가 상처를 받았느냐? 피해자는 그 사건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제까지의 세계, 제러드 다이아몬드, p154]


미셸 푸코, 움베르토 에코 마찬가지로 이름에서 괜스레 멋스러움이 풍겨나오는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최신작.


우리는 아마존, 아프리카 등지에 사는 원시부족 - 이게 정치적으로 올바른 용어인지는 자신이 없다 - 의 모습을 그저 호기심으로 바라본다. 문화적 다양성을 이야기하고 문명의 진보가 단선적이지 않음을 말하지만 현대문명을 이룬 우리가 그들보다 우수하다는 생각을 내재화하고 있지는 않은가?



어제까지의 세계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출판사
김영사 | 2013-05-09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세계적 석학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대연구 3부작 완결편! 『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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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교수는 책 전반에 걸쳐 ‘어제까지의 세계’에서 사는 부족사회의 모습을 묘사한다. 우리가 보기에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그 사회가 실제로는 그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고민의 결과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현대국가에선 구성원들간 분쟁이 일어났을 때 이해당사자들의 시시비비를 가리는데 힘쓴다. “재판에서 국가의 최우선 관심사는 잘잘못을 가리는 것이다.” “근원적인 사건과 그로 인한 소송 과정은 양쪽 모두에게 감정의 앙금을 남기지만, 국가는 그런 감정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제까지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에겐 감정의 회복이 중요하다. 수백만이 모여사는 도시에서 분쟁 당사자들은 생면부지의 남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부족사회에서 분쟁을 겪는 상대는 평생을 마주하며 살아온 사람이고 앞으로도 다시 평생을 마주해야 하는 사람이다. 이들에겐 분쟁의 해결, 그 뒤에 남는 감정의 앙금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그들의 해결책은 시가닝 오래 걸린다. 공평해 보이지 않는다. 피해액에 따라 보상하지 않고 감정에 상처를 입은 만큼 보상한다. 때로는 관계의 회복을 위해 피해자가 보상하기도 한다. 분쟁의 해결을 위해 온 부족이 참여한다.


분명히 얽히고 설켜 ‘남’들과 살아가는 여기 남양주에서 저렇게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가족의 문제까지 법정으로 가져가서야 해결을 보고, 재판이 끝나고 나면 평생을 원수로 지내는 우리와 저들을 비교해보면 저렇게 살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은 해봐야지 않을까.

Posted by 눈감기 시워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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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철도노조 파업 뉴스가 나오고 철도 민영화 얘기가 나오길래 뭔가 하고 알아본 김에 간단히 포스팅


처음 봤던 뉴스는

철도노조 파업 돌입..전국 역 큰 혼잡 없어(종합2보)

노조 "철도민영화 막아내고자 불가피한 선택"

코레일 "불법 파업"…노조집행부 194명 경찰에 고발

노조의 주장은 철도 민영화를 막으려고 파업했다는 것이고 사용자인 코레일은 불법 파업이라고 단정지었다.


그리고 오늘은 이런 뉴스가 
국토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현재 조합원 181명(누적)이 업무에 복귀했다. 오전 9시 71명에서 5시간 만에 110명이 일터로 돌아왔다. 시간이 갈수록 이탈자 수가 증가하는 양상이다. 코레일 사측이 파업 참가자 4356명 전원을 직위해제 하는 강수를 둔 것도 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전체 파업참가자 중 오늘 추가로 110명이 파업에서 이탈해 업무 복귀를 했다는 얘기다. 기사로 추측해보면 첫 날 71명, 둘째날 110명(오후 2시 기준) 도가 파업 이탈인데 이게 보통 파업에 비해 많은 건지 적은 건지 모르겠다.

좌우간 노조가 얘기하는 '철도 민영화'의 철도는 수서고속철도(수서발 KTX)를 얘기하는 것이었다. 수서고속철도는 수서 ~ 평택을 연결하는 고속철도다. 평택에서 기존의 고속철도(KTX)와 만나고 경부선과 호남선으로 이어진다.

         (출처 : 위키피디아)


경부고속철도가 만들어지고 나서 고속철도에 대한 수요가 늘어가는데 서울 ~ 시흥 구간이 고속/일반/화물/전철이 선로를 공동으로 사용하다보니 선로용량에 대한 문제가 발생했다. 고속철도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고 고속철도 설치지역이 늘어나면 서울진입에 과부하가 걸릴 것이 분명했다. 서울로의 진입을 원활하게 하고 수요를 분산시켜줄 노선을 추가해야할 필요성은 있어 보인다.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해관계자 모두 이견이 없었다. 경기도에서 수서 ~ 동탄간 GTX를 추진하면서(이건 저번 경기도지사 선거 때 김문수 지사가 열변을 토할 때 들어본 거 같다) 노선 일부 공동사용에 대한 이야기들이 조금 오고 갔지만 노선 공동사용으로 결론을 지었다.


이 수서고속철도가 시끄러워진 건 2011년 국토부가 수서고속철도에 대한 운영권을 대기업에 넘기겠다고 하면서부터다. 철도와 철도차량은 철도시설공단이 소유하고 운영권은 입찰을 거쳐 대기업에 맞기는 형식으로 하겠다는 거였다. 국토부가 노선의 운영권을 민간에 넘기면서 들었던 근거는 '경쟁체제 도입'이었다. 현재 서울에서 KTX를 타기 위해선 서울역에서만 KTX를 탈 수 있지만, 수서노선이 개설되면 이용자들은 서울역과 수서역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기업에 대한 비효율성에 대한 이야기는 늘상 있어왔던 이야기다. 정부는 이참에 경쟁체제를 도입해 코레일의 방만경영을 바로잡겠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철도민영화에 대한 우려와 반대가 이어졌다. 정부는 민영화는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이건 어떻게 봐도 민영화로 보인다. 운영권을 대기업이 갖고 있는데 그게 민영화가 아니라면 뭐가 민영화인지. 정부는 대기업 기분 축소 / 중소기업 지분 참여 등으로 수정안을 냈지만 이것 역시 민영화이기는 마찬가지.


이런 과거를 가졌던 수서발KTX였다. 국민이 반대하는 민영화는 추진하지 않겠다고 얘기했던 박근혜 대통령이었고, 정부는 수서선에 대해 '독일식 지배구조'라는 새로운 카드를 빼들었다. 


이게 뭔고하니, 우선 수서발KTX를 코레일의 자회사 형태로 만든다. 지분의 41%는 코레일이 보유하고 59%는 연기금이 보유하는 형식이다. 그리고 정관을 통해 연기금이 보유한 59%의 지분을 민간에 매각하는 것은 금지하도록 한다. 민간참여는 배제하면서 경쟁체제를 도입할 수 있다는 게 정부측 주장이다. 이렇게 보면 정부안에 문제가 없어 보인다. 경쟁체제도 도입도 바람직해 보이고 민영화도 방지할 수 있다.


그런데 노조는 정부의 이런 방식이 결국은 철도의 민영화로 이어진다는 주장인거다. 대법원 판례에 '정관의 규정만으로 주식의 양도를 제한하는 경우에도 주식양도를 전면적으로 금지는 규정을 둘 수 없다'는 것이 있다고 한다. 결국 연기금이 위의 판례를 들어 지분의 민간매각을 주장하면 막을 방법이 없고, 결국 민영화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노조가 주장을 들어보니 또 노조의 얘기가 맞는 것 같다.


정부는 노조의 주장에 대해 다시 반박하는데 대법원 판례는 주식매각 자체를 금지하는 경우를 말하고 있지만 수서발KTX는 공공자금간 주식매매를 금지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합법이라고 주장한다. 정관에 매각대상을 지자체, 공공기관, 지방 공기업으로 제한하고 정관변경 요건을 추가해 코레일의 동의 없이 정관변경을 할 수 없도록 할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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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살펴보고 나니... 잘 모르겠다. 정부의 말과 노조의 주장 중 무엇이 맞는 말인지.

노조의 우려가 과한 것인지, 정부의 안이 너무 안이한 것인지. 내가 저런 법리적인 논쟁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 읽어보고 말이 맞는 쪽 편을 들 수 밖에 없는데 양쪽 다 일리가 있는 말들을 하니...


그런데 사안을 정리하고 보니 드는 의문은 도대체 수서발KTX는 어떤 요소를 가지고 차별화를 해서 코레일과 경쟁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정부가 그냥 수서발KTX를 코레일에 맡기지 않고 이런 어려운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경쟁체제 도입'이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 그런데 역 하나가 더 생기면 그걸로 차별화, 경쟁체제 도입이 될까? 두 역이 서로 요금을 다르게 하려나? 아니면 두 노선의 열차가 다른가? 차별화된 승무원의 서비스? 수서역과 서울역에서 모두 KTX를 이용할 수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가까운 역에 가서 KTX를 타지 않을까? 가격차이가 2~3000원 이상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집에서 먼 곳에 가 KTX를 탈 필요가 없다. 


경쟁체제는 참 좋아보이는 말이긴 한데, 난 도대체 뭘 가지고 경쟁을 하고 차별을 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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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2 추가

노조측 인터뷰를 듣고 추가로 알게 된 부분.

현재 코레일의 노선들 중 흑자를 보이고 있는 유일한 노선이 KTX 노선이라고 한다. 그리고 수서발KTX는 전체수요의 20% 정도를 담당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그러니까 정부가 코레일의 방만경영을 바로 잡을 방책의 하나로 수서발KTX의 법인 설립으로 인한 경쟁체제는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이다. 코레일 사업부문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내는 부분을 왜 별도 자회사로 설립을 하느냐는 것. 수서발 KTX가 기존 KTX의 수요를 분산시켜 KTX 수입이 들어들 것이고 결과적으로 코레일에는 더 안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국 성과 악화로 인해 코레일 민영화의 빌미를 주게 된다고 하는 노조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Posted by 눈감기 시워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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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2.10 23:17 바다안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론은 정확히 보고 계시네요.. 철도는 경쟁이 될수 없는 분야입니다.
    서울역이 가까운 사람은 서울역에서 타는거고 수서역이 가까우면 수서역에서 타는 거죠.
    그런데, 정부는 경쟁체제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수천억을 추가로 들여서 별도 법인을 세울려고 합니다.
    민자로 운영되던 인천공항철도가 적자가 심해지니깐 철도공사가 통합해서 운영하는 것이 효율적이다고
    강제로 떠넘겼던 국토부가 지금은 수서발 KTX 노선 대부분 구간이 기존 경부선 구간과
    겹치는데도 비효율적으로 별도 법인을 세우고 있습니다.
    국토부가 4대강과 똑같은 만행을 지금 철도에서 벌이고 있는 겁니다.

  2. 2013.12.15 22:03 남자의향기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트위터에 퍼갈께요 정리가 잘되어있네요

  3. 2013.12.16 01:43 좋은글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의문점이 한방에 해결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보고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는 계기를 가지면 좋을텐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처음 접한 건 대학교 초년 시절, '호숫가 살인사건'이란 책을 통해서였다. 그때는 재밌게 읽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게이고의 소설을 다시 읽게 된 건 '용의자 x의 헌신'란 영화를 본 뒤다. 추리물에서 트릭이란 작품의 중추역할을 하기 때문에 많은 추리물들이 독특한 트릭을 만드는 데 애를 쓰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런데 용의자 x의 헌신은 그 트릭에 주인공의 인생이 담겨 있었다. 주인공이 만들어 낸 트릭에서 그의 사랑, 외로움, 간절함이 느껴졌다.


연달아 게이고의 소설을 읽다보니 그의 특징이 더 명료하게 보였다. 그의 소설은 분명히 추리소설로 분류되지만, 게이고의 소설은 '이야기'에 집중한다. 이야기 뒤에 숨겨진 트릭, 비밀은 이야기의 핵심과 맞닿아 있다.


보통 추리소설은 범인이 누구인가에 초점이 맞혀져 있다. 극 초반에 사건이 발생하고, 용의자들을 인터뷰 해나가고, 단서들을 조사해 나가면서 독자들이 트릭과 범인을 추리할 수 있는 힌트들을 제공한다. 게이고의 소설은 다르다. 게이고의 소설은 분명히 추리물이지만 추리에 머리를 쓰기보다 본래의 이야기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오히려 극 초반에 범인이 누구인지 다 밝혀지기도 한다(악의, 성녀의 구제). 아예 트릭까지도 알려준다(악의). 하지만 미스터리 특유의 긴장감이 누그러지는 일은 없다.  게이고의 이야기가 가진 힘이다. 


게이고는 범인과 트릭을 알려주는 대신 '동기'를 숨겨 둔다. '성녀의 구제'는 페이지가 몇 장 넘어가기도 전에 범인이 밝혀진다. 정확한 트릭은 이야기의 끝에 가서야 밝혀지지만, 대략적인 내용은 충분히 짐작을 하고 남음이 있다. 왜 범인은 저런 트릭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는가. 어떻게 그는 범행의 동기를 갖게 되었는가. '악의' 역시 마찬가지다. 범인은 몇 가지 트릭을 쓰지만 경찰은 어렵지 않게 그를 잡아 낸다. 하지만 남아 있는 찝찝함... 이야기의 대부분은 경찰이 범인의 동기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새벽거리에서'는 끝까지 범인과 트릭을 숨겨 둔다. 그러나 역시 이야기의 핵심은 '동기'다. 왜 그는 그럴 수 밖에 없었는가.


세 소설을 비교해 보자면, '성녀의 구제'는 극의 반전이 놀랍다. 게이고의 소설이 다 그렇지만, 이야기의 마지막을 읽고 보면 제목이 가슴에 박힌다. '악의'는 게이고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동기에 대한 물음과 추적. 소설의 형식도 두 사람의 수필이 교차 편집되어 있는데, 사건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선과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악의와 거짓말들을 읽어 내는 재미가 있다. '새벽거리에서'는 세 소설들 중에 가장 이야기에 집중한다.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셋 중 가장 치밀하다. 


 한 동안 책을 손에 서 놓았는데 다시 좀 책을 읽어봐야 겠다 싶을 때, 다시 책에 재미를 붙이려고 할 때, 게이고의 소설은 추천할 만하다. 김전일과 코난의 추리와는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누가'가 아니라 '왜'를 묻는 추리소설.

Posted by 눈감기 시워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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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서평 / 2013. 12. 3. 21:18


살인자의 기억법

저자
김영하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3-07-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첫 문장의 강렬함이 채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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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게 빠알간 표지가 눈길을 끄는 책인데 나는 e-book으로 읽었기 때문에 상관이 없는 얘기다. 문학을 좀처럼 읽지 않는 내가 어쩌다 이 책을 샀느지 모르겠는데, 아마도 제목이 특이해서 그랬던 건가 싶다. 그리고 이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기도 하고. 작가인 김영하씨는 유명한 소설가라고는 알고 있는데 내가 읽어 본 책은 없다. 그러나 소설을 안 읽는 나도 알 정도니 유명한 소설가인 건 맞다.


책의 소재도 참 독특하다. 이야기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나’는 연쇄살인범이다. 지금은 사람을 죽이진 않는다. 그런 그가 치매가 걸려 기억을 잃어 간다. 이 책은 그 주인공이 잃어 가는 기억의 편린들을 기록한 것들이다. 기억을 잃어가는 주인공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 주인공은 그가 한 눈에 연쇄 살인범임을 알아챈다. 이렇게 설정 자체가 꽤 흥미롭고, 이야기가 전개되는 양상도 읽는 사람의 긴장감을 고조시켜 나간다. 


책을 읽을 때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읽고 나니 영화 ‘메멘토’가 많이 생각났다. 순간 밖에 기억하지 못 하는 주인공은 온 몸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문신한다. 그 메모들을 따라 자신의 여행을 해나 간다. ‘살인자들의 기억법’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기억을 잃어가는 주인공은 노트에 메모를 하고, 테이프에 녹음을 한다. 그렇게 자신을 기억하려 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기억하려 한다. 하지만 스러져 가는 기억을 붙잡을 수가 없다.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제목, 흥미로운 소재,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할 수 있도록 하는 문체, 처음부터 극의 종반까지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이야기 구성. 겨울에 고구마 까 먹으면서 읽기에 부족함이 없는 소설이다. 

Posted by 눈감기 시워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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