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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동안 동성애에 대해서 생각해온 걸 한 번 정리한다는 의미로 포스팅합니다. 기독교와 동성애를 주제로 쓴 글인데요, 조금 읽다가 재미 없으신 분은 뒤쪽만 읽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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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동성애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분위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커밍아웃 하나로 사회적으로 매장되던 한국이었는데 이젠 동성애자들의 인권 보호를 위한 법제화까지 추진될 정도로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많이 변화했습니다. 그럴수록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갑니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기독교(특정하면 개신교)가 서있습니다.

기독교가 동성애를 반대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성경이 동성애를 죄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씌어졌으며 오류가 없다라고 믿는 기독교에서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구절은 꽤나 여러번 등장합니다. 동성애를 옹호하는 학자들은 동성애에 대한 우호적인 성경 구절들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그 선명성은 동성애를 죄로 보는 성경 구절에 비해 떨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내부적으로도 동성애자들을 받아들이는 폭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미국 장로교는 논란끝에 동성애자의 성직안수를 받아들였습니다. 미국 성공회,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 미 남침례교단 내 일부 교회들도 교회내에 동성애자를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내외부적으로 동성애와 관련한 치열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여기까지 글을 써내려 온 이유가 뭘까요?

저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가 싫습니다.

동성애를 다루는 기독교 서적은 무척이나 많습니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주제인만큼 많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집중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는 존 스토트 목사의 '현대 사회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란 책입니다. '대표적'이라고 말하긴 부족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동성애에 대한 책이라기보다는 논란이 되는 여러가지 사회문제들에 대해 기독교인은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가에 대한 입장을 차분한 어조로 정리한 책입니다. 그 중 한 챕터가 동성애 문제로 할애되어 있습니다. 나중에는 동성애 챕터가 '존 스토트의 동성애 논쟁'이란 책으로 따로 발간되기도 합니다. 동성애와 관련한 성경구절들을 살펴보고 동성애를 옹호하는 측의 논리를 반박하는 식으로 책이 전개되고 결론적으로 동성애는 죄지만 기독교인들은 동성애자들을 목회의 관점에서 대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동성애와 관련한 국내 서적으로는 작년에 발간된 '동성애에 대한 기독교적 답변'이 있습니다. 국내 여러 학자들의 글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이 책의 모토(?)는 “동성애를 긍정하지 않지만, 동성애자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교회”입니다. 존 스토트와 마찬가지로 동성애가 죄다, 아니다라는 논란이 있지만 성경적으로 볼 때 동성애는 죄지만 동성애자들을 자신의 의로 정죄하는 것은 죄이며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2003년 논란이 되었고, 최근에는 학생인권조례로 논란이 되고 있는 동성애 차별금지법안과 관련해서는 동성애를 죄라고 가르치는 것을 막는 것은 반대하나 동성애자가 차별받지는 않도록 해야한다고 쓰고 있습니다.

앞단락에서 언급한 두 책은 그나마 굉장히 온건하게 동성애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동성애가 죄지만, 동성애자들을 죄악시하여 배척해서는 안되며 그들을 포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동성애에 대한 기독교적 답변'이 나오고 책에 대해 쏟아졌던 기독교계의 비판을 보면 동성애도 죄고, 동성애자도 죄인이다라는 생각이 더 많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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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저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가 싫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참 많습니다. 그리고 그 중 많은 것들은 대체로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이란 것과 일치합니다. 물론 아닌 것들도 많습니다. 기독교가 경전으로 삼고 있는 성경이 금지하고 죄라고 말하는 것들을 반대하는 것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저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가 싫습니다.

왜요?
성경을 들어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의 태도가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말했지만 성경이 언급하는 죄는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동성애만큼 목숨걸고 반대하는 죄가 또 있나 싶을 정도입니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지 말라!
성경은 동성애만큼이나 명확하게 이자를 받지 말라하고 희년을 실천하라 하는데(희년이란 아주 단순화해서 말하면 50년에 한번씩 빚을 싹! 탕감해주라는 겁니다. 아무 조건없이), 저는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성명을 발표하는 기독교 단체들이 이자를 받지 말자, 빚을 탕감해주자라고 얘기하는 걸 들어보지 못 했습니다. 이자를 안 받기는 커녕 기독교 은행을 설립하자고 난리였습니다.

왜 이자를 받아야 합니까? 이걸 성경을 근거로 합리화할 수 있습니까? 없다면, 그래서 죄라면, 왜 기독교는 금융업계에 대해선 각을 세우지 않습니까? 왜!!! 동성애자는 죄인인데, 잘나가는 은행장은 장로가 될 수 있습니까. 동성애자는 교회에서 자기가 동성애자라고 말도 못하는데, 돈놀이하는 사람은 떵떵거릴 수 있습니까?

동성애가 죄인 이유가,,, 목사님들이 동성애가 싫어서는 아닙니까? 이자를 받는 게 죄가 아닌 이유가... 목사님들이 이자를 좋아해서는 아닙니까? 동성애를 옹호하는 학자들에 대해서 세우는 보수적인 그 잣대가 왜 이자받는 사람들에 대해선 그리도 무른가요?

교회가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핍박받지는 않을 겁니다. 교회가 금융업을 반대하면 100% 핍박받을 겁니다. 교회가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신자가 떠나지는 않을 겁니다. 교회가 이자 받는 것을 반대하면 신자가 떠날 겁니다.

 저는 도대체 동성애를 반대하는 교회의 저의를 믿지 못하겠습니다.

Posted by 눈감기 시워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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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2.09 09:38 백두산호랑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재미있네요. 잘 기억해 뒀다가 아는 기독교인 친구에게 꼭 얘기해 줘야겠어요. ㅋ

    그런데 일부에서는 주식투자도 죄고 주식회사는 죄다 사탄의 회사다.. 이렇게 말하는 분들도 있다고 하더군요.

    저는, 법적 처벌을 받느냐, 집단을 형성하느냐, 진행형이냐..이런 부분에서 살인자와 동성애에 대한 입장이 달라지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2. 2012.11.11 16:42 mxwes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회 금융업이라... 저는 잘 모르겠지만 만일 그런 게 있다면 잘못된 점을 가감히 고쳐야 하겠죠.
    그걸 육의 욕심이 가로막는 겁니다.
    그리고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이 말이 사실 실천하고자 하는데도 힘든 건 그 죄의 통로가 사람을 거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만일 어떤 사람이 나를 이유없이 때리고 심한 모욕을 주었는데 그 순간에 그 사람 죄만 미워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될까요?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제가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은 동성애가 죄라고 여기는 교회에 대해서 회의적인 님의 입장입니다. 성경에서는 분명히 동성애가 죄라고 말하고 있으며, 그 사실은 무엇이라고 해도 변함이 없다는 사실 또한 알아두셔야 합니다. 그것이 싫고 말고는 상관 없습니다. 님께서는 크리스천이신 것 같은데 과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살펴 보시길 바랍니다.
    (아니라면 죄송합니다.)

    그리고 제 소견이지만 동성애에 교회가 특히 민감한 이유는 그것이 성적인 죄이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다른 죄와 달리 성적인 죄는 분명히 하나님의 성전이나 다름없는 자신의 몸에 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 죄의 깊이가 다른 죄에 비해서 다른 거죠.

OWS가 이슈는 이슈다. 전세계가 난리다. 이런저런 분석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슬라보예 지젝(이름만 들어도 뭔가 어렵고 대단할 것 같은 학자)의 거리 연설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파레토의 20:80을 넘어 OWS는 1% 대 99%의 싸움이라는 새로운 판을 짰다. 아니, 예전부터 있었던 판에 새로운 이름만 붙인 거라고 할 수 있겠지. 근데 이 작명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는지 뭐만 하면 다 1%와 99%의 싸움이라고 선전을 하고 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당연히 자신은 99%에 속하는 사람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거겠지.

금융위기가 터지고 나서부터 지겹게 들어왔던 말이 '탐욕'이다. 월가의 탐욕, 부정. 1%의 탐욕이 전세계를 파멸로 이끌었다! 그럼 그동안 99%는 뭘하고 있었던 건데? 1%가 탐욕에 빠져 전세계를 망치고 있는 동안 99%는 순결하게 있다가 당했던건가? 난 원래 돈벌고 싶은 맘 없었는데 1%가 하도 서브프라임 대출받아서 집사라니까 집산거고, 그런거야?그러니까, 순진하고 죄없는 99%에 대해 1%는 사죄하고 책임을 지라는 얘기야? 괜한 꼬투리인 건 안다. 이름부터 멋진 지젝님은 이건 단순한 탐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고 말씀하셨다. '구조'라는 말은 표면적인 현상을 넘어 뭔가 본질적인 것을 건드리는 듯 하고 대단해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는데 하도 '구조'라는 말을 많이 듣다보니 신선도는 좀 떨어진다. 어찌됐든, 몇명 월가 사람들의 탐욕이 문제가 아니라 악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신자유주의'의 구조가 문제라는 얘기겠지. 그래서 지금 OWS는 각성한 99%가 분연히 떨쳐 일어나 1%에게 이 구조를 바꾸라고 외치고 있는 역사적인 사건인 것이다!!

그래서,,, 이 시위의 결과, 1%가 없어졌다고 하면, 세상은 나아질까? 다른 1%가 생기겠지. 구조가 바뀌면 이런 일이 없을거라고? 파레토의 20:80법칙은 참 재밌는 점을 시사해준다. 쥐를 갖고 실험한 결과, 폭력적인 쥐들끼리만 모아 놔도 지배층 20%, 피지배층 80%가 생기고, 온순한 쥐들만 모아 놔도 결과는 마찬가지라지. 시스템 설계를 잘 해서 유토피아를 건설했다고 치면, 저 놈의 20%가 없어지겠냐는 말이다. 파레토의 20:80이 말하는 건 구조나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생물의 본능에 해당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이 판은 그 놈의 구조가 악랄해서 20:80이 아니라 1:99가 됐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아무리 판을 잘 짜봐야 20:80, 잘 나가는 놈: 못 나가는 놈의 이 판 자체가 깨질 일이 없겠다 싶다. 플라톤은 철인정치를 말했는데, 플라톤 같은 철학자로만 가득찬 세상이라도 1%는 반드시 생길꺼다. 지금 우리가 열심히 시위를 한 결과는 결국 1%의 비중을 조금 늘리는 게 되는거지 우리가 꿈꾸는 새판이 될 순 없다. 그리고 인간은, 내가 1%에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면 굳이 이 판을 깨기보단 1%에 들어가려고 하는 존재인 것 같다. 아직 인생경험과 통찰이 한참 부족한 내가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하기가 조심스럽긴 하지만. 1%가 99%를 지배하는 구조 자체가 1%가 떡고물을 갖고 99%를 구슬려서 너도 1%가 될 수 있다는 희망고문을 계속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 같은데....?

그리고 또 한 가지의 불만!!!!!!!!!!!!!!!!!!!!!!!!!!!!!!!
99%라고 당당히 밝히는 사람들!!! 도대체 왜 99%가 그 놈의 구조를 바꾸는 데 1%에게 애걸복걸 하는거야. 99%면 만장일치에 가까운 거잖아. 근데, 99%를 갖고도 구조를 못 바꾼다고? 이 구조를 바꾸려면 1%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이런 뭐같은 경우가 있나. 99%라면, 1%의 동의 따위 없이 새 판을 짤 수 있어. 1%의 동의와 합의 하에 짜는 새 판? 그건 절대 지금과 다른 새 판이 될 수 없어. 또다른 매트릭스일 뿐이야. 난 절대 20:80의 구조를 깰 순 없을거라고 했지만, 혹시나'하는 희망을 갖고 있는데 1%와 함께 짜는 새판이란 것에선 그 '혹시나'하는 희망조차 품을 수 없어.

글을 다 쓰고보니, 내가 굉장히 급진적인 혁명주의자 혹은 염세주의자처럼 느껴지긴 하는데,,,
그런 건 아니라고 변명할 맘은 없지만 나는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혹시 이 글을 읽고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굳이 말릴 생각은 없습니다. 
Posted by 눈감기 시워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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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트는 제목에 대한 답을 갖고 있는 포스트는 아닙니다.
그저 결혼식 참석 회수가 늘어나며 결혼식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됐는데
그러던 중 갖게 된 의문을 한 번 정리해보아야겠단 생각으로 하는 포스팅입니다.

우리나라엔 전통혼례라고 하는 예식도 있지만
요즘 민속촌 문화 행사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전통혼례지
주변에서 누가 전통혼례로 결혼 예식을 치루는 경우는 없을 듯 합니다.

결혼식에 가 목격하게 되는 풍경은 대략 이렇습니다.
신부는 꽃단장을 하고 신부 대기실에서 놀이공원 마네킹마냥 같은자세로 사진 찍어주는 역할을 하고
신랑은 식장 입구에서 경련이 날 듯한 미소로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축의금도 빼놓을 수 없겠고.

식이 시작되면 양가 어머니들은 곱게 차린 한복을 갖춰 입으시고
식장 전면에 있는 촛불을 밝힙니다.
신랑이 입장하고, 곧이어 신부가 아버지 손을 잡고 입장합니다.
결혼 예식에 등장하는 수많은 등장인물들 중 한복을 입은 사람은 양가 어머니 뿐입니다.
왜 그럴까. 왜 그럴까. 왜 그럴까.
어쩐지 양장을 입은 어머니들의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고보면 나이가 있으신 여성분들은 집안의 큰 행사엔 주로 한복을 입으시더군요.
하지만 남자분들이 한복을 입으시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언제나 양복차림입니다.

근래들어 사람들이 한복을 안 입는 이유는 대체로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불편하다/아니다를 따지고 싶은 마음은 없고
불편하다고 느끼는 게 중요합니다.
한복은 활동복/양복보다 불편하도 여겨집니다.
한복은 양복에 비해 점잖은 느낌이 부족한 것도 같고요.
양복이 대체로 어둡거나 단색인데 반해 양복은 둥글둥근한 선에 색동색을 띄어서 그런 듯 합니다.

남자들은 활동적이고 점잖은 느낌의 양복을 입고
여자들은 불편하고 색이 고운 한복을 입는다...

결혼식의 꽃이 신부라고도 하지만
결혼식에서 신부의 역할이 뭐가 있죠? 신부입장... 그거 하나죠.
하객맞이를 하는 것도, 결혼식에서 이런저런 이벤트를 하는 것도 전부 다 신랑입니다.
신부는 그냥 예쁘게 화장하고 예쁘기만 하면 됩니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보니,
어쩐지 결혼식에서 여자들을 그냥 예쁜 장식품으로 모셔두고 감상용으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거슬리더군요.

한국식도 아닌, 서양식도 아닌
국적을 상실해버린 국적불명의 결혼식 속에
꽃처럼 예쁘고 순종적으로 뒷켠에 물러 앉은 여자.
그런데 이미 결혼식에서 비싸고 예쁜 웨딩드레스를 입는 게 여자들의 로망이 되어버린 지금,,,
나 혼자 불편함을 느껴봐야 뭐 할까.
나중에 내 아내 될 사람도 그냥 남들 하는대로 하고 시어할텐데...

Posted by 눈감기 시워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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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uffingtonpost.com/jim-wallis/will-politicians-listen-t_b_898773.html

허핑턴 포스트에 올라온 짐 월리스의 글이다.
짐 월리스는 미국 기독교에서 진보계열을 대표하는 목사로 알려졌는데, <회심>이나 <예수의 정치학>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Jim Wallis - World Economic Forum Annual Meeting Davos 2010
Jim Wallis - World Economic Forum Annual Meeting Davos 2010 by World Economic Forum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종교인들의 정치 참여는 늘상 문제가 되는데
짐 월리스 역시 그런 비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의 주장과 운동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
그가 정치 참여의 명분을 언제나 기독교의 도덕적 가치에 두기 때문이다.

정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구제.
대부분의 종교가 중요시 여기는 가치들이고 이는 기독교 역시 마찬가지다.
짐 월리스는 언제나 위의 가치들에 근거하여 나의 입장은 이렇다~ 이런 운동을 하자~ 동참해달라~ 호소한다.
같은 종교를 갖고 있더라도 그 정치적 입장이나 선호는 다를 수 있으나
기독교인이면 마땅히 중시해야 할 가치들이 있기 마련이다.
한국의 기독교가 정치 참여와 관련하여 비판만 받는 이유는
그들의 정치 참여가 그들의 종교적 가치와는 무관한 이해 집단으로서만 기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링크를 건 기사는
미국의 예산 삭감과 관련하여
예산 삭감의 주 희생자가 저소득층 사람들임을 인식하고
로비조차 하지 못하는 그들을 대신해 목사들이 목소리를 내고 국회의원들에게 편지를 쓰자는 내용이다.
이것 또한 그들에게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지 않겠나라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그가 내세우는 도덕적 근거는 명확하다.
기독교는 약자의 편에 서야하고, 예산 삭감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희생을 요구한다. 따라서 예산 삭감에 반대한다.

예산삭감의 옳고 그름을 떠나(정치적/경제적 계산에 따른)
종교인이라면 분명 신앙적 신념과 도덕적 가치에 따라 정치적 목소리를 내야지
그들이 경제적/정치적 분석에 따라, 이익에 따라 목소리를 내선 안 된다.
이런 일들을 할 단체들은 많이 있다.
사회가 그들에게 바라는 것도 그게 아니다.

정의. 양선. 사랑. 약자를 대변함.
연일 뉴스에 오르 내리는 기독교계의 행보에서 이 같은 가치들을 읽을 수 없음이...
Posted by 눈감기 시워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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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2.16 10:11 장동만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종교인의 현실 참여


    “우리는 (세상의 잘못된 것에 대해) ‘No!’ 라고 말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 ‘복음의 기쁨 (Evangell Gaudium)‘에서

    카톨릭 전주 교구 박 창신 신부의 ‘시국 미사’가 일파만파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정치 사회적으론 종교인의 정치적 발언 내지 행위의 타당성 정당성을 에워싼 논란이 뜨겁고, 학계에선 새삼 정교 분리 (statecraft vs. soulcraft)의 역사를 고찰하는가 하면, 카톨릭 내부에선 교리(서) 해석이 분분하다.

    이 모두가 근본적인 시각이 다르고, 그 문제 접근 방식이 달라 마치 백가쟁명 양상인데, 나로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종교인, 특히 목회자 (신부/목사)의 현실 참여 문제에 대해 평소 생각하던 바를 좀 적어 보고저 한다.

    종교 (신앙) 인으로선 인간 만사 모두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다. 인간 생명의 존립을 좌지우지하는 현실적인 정치 경제도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그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은 하나님의 뜻대로 정의롭고 공평하고 선(善)하게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번 박 신부의 ‘시국 미사’ 파동에 대해 서울 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는 이렇게 말한다. “정치 참여는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이 임무를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평신도의 소명 으로 (카톨릭 교리서는) 강조하고 있다.”
    “사제들은 먼저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와 신자들의 고통과 짐을 질 수 있어야 한다”

    정치 참여 내지 정치 행동이 평신도들에게 소명이라면 사제에게는? 그리고
    사제들이 신자들의 고통과 짐을 함께 질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비교인 (非敎人)에겐 많은 의문을 자아낸다. 어딘가 앞뒤가 안 맞는 논리적인 모순을 느낀다.

    브라질 돔 헬더 까마라 대 주교는 이렇게 말한다.
    “가난한 사람에게 빵을 주면 그들은 나를 성인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내가 가난한 사람들이 왜 빵이 없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나를 공산주의자라고 한다.
    (When I give food to the poor, they call me a saint.
    When I ask why the poor have no food, they call me a communist.)”
    자비를 베푸는 것은 종교 행위이고, ‘가난의 이유’를 묻는 것은 곧 정치 행위가 된다? 참 아이로닉한 이야기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또 강론한다.
    “지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Listen to the voice of the earth)”
    “지상의 목소리”가 무엇인가?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제 아닌가.
    “귀를 기울여라.” 곧 거기에 관심을 갖고 행동라는 말 아닌가.

    보수 전통 종교, 많은 보수 주의 목회자들은 교회 안에서 개인의 (영혼) 구원만을 설교한다. 인간의 하루 하루 생존을 좌지우지하는 정치/경제 문제는 그들이 간여할 바가 아니란다. 그것들은 정치 경제하는 사람들의 몫, 정교는 분리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묻고 싶어진다.

    그렇다면 정치 경제가 잘못 돌아갈 때, 그로 인해 숱한 생명이 고통을 받을 때,
    ‘하나님 듯’을 이 땅에 펼친다는 그들로서 이를 외면, 오불관언 해도 좋을 것인가.
    그래서는 안될 줄로 안다.

    그들은 누구보다 앞서 하나님 정의의 깃발을 높이 쳐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 땅의 불의, 죄악, 불공평, 불선 (不善)을 증언하고 규탄해야 한다. 이는 한갓 정치(적) 발언 / 행위가 아닌, 곧 ‘하나님 말씀’의 대변이자 실천이며 그들의 소명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또 이는 한 생명을 구원하는 소선 (小善)을 뛰어넘어 다수를 함께 구원하는 공동선 (共同善)의 길이기 때문이다.

    <장동만> <12/01/13>

    P.S. 첨부한 글, ‘잉여 청춘이여,
    Think Global!”

    관심 있으신 분, 한 번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난 아이폰3GS와 아이패드1을 사용하고 있다. 삼성의 갤럭시S나 갤럭시탭이나, 그 밖의 다자이어니, 뭐니 이것저것 새로운 스마트폰이랑 태블릿 PC들이 나오면 항상 이들은 아이폰, 아이패드 킬러라며 이들과 비교해 월등한 자신들의 스펙을 자랑한다.

LED가 좋아졌다, 속도가 빨라졌다, 가볍다, 배터리 지속시간이 길다, 카메라가 좋아졌다 ETC. 그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이나 직접 써보기전엔 저런 하드웨어 적인 스펙에 '혹'할 수 있다. 당장 컴퓨터 살 때만 해도 CPU 좋고 램 좋고 하드 크고 그런 거 사잖아. 전에 핸드폰 살 때도, 디자인 좀 예쁘고 카메라 좀 좋은 거 사면 되는 거였으니까.

근데 스마트폰이랑 태블릿은 완전 다른거였다. 물론 위에서 말한 하드웨어 스펙이 좋으면 당연히 좋다. 근데 이것들을 내가 얼마나 '간지나게' '편하게' 쓰냐는 건 하드웨어 스펙이 아니라 '어플'에서 결정난다.

아이패드 2가 나오기전에 아이패드를 쓰는 사람이 주변에 별로 없었다. 그러다보니 신기해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건 이러고이러고 쓴다는 걸 한 번 쫙~ 시연해준다. 그러면 그냥 아이폰 좀 큰 걸로 인터넷이나 하겠거니 하던 사람들 눈이 달라진다. 슬링노트를 사용해서 인터넷 서핑중에 그냥 손가락으로 쓱싹해서 캡쳐를 뜬다거나, UPAD를 이용해 필기를 하고, PDF 파일에 밑줄을 쳐가며 읽는다거나, QWIKI를 사용해 멋들어진 프레전테이션을 보여주고, 키노트로 짜잔` 하고 마무리하면 정말 다들 당장이라도 사러 갈 눈빛들이다.

사람들 맘을 끄는 건, 정말 중요한 건 스마트한 그 기계들을 갖고 뭘 할 수 있느냐이다. 이것들은 자신들이 왜 '스마트'하다고 불리는 건지 존재의 의의를 증명해야 하는 거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건 하드웨어 스펙이 아니라 어플리케이션이다. 하드웨어야 당연히 먼저 나온 기계가 성능이 좀 더 떨어지겠지. 늦게 나온게 성능까지 나쁘면 어떡하잖거야...

근데!!! 왜 블로그 포스트들은, 신문기사들은 제품 리뷰를 다 하드웨어가 어떻더라, 화질이 어떻더라 이러는 거냐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구요!!! 남자들이 예쁜 여자 밝히면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씀이 있죠? 여자 얼굴 뜯어먹고 사는 거 아니다. 예쁜 거 얼마 안 간다... 비슷하다. 스펙 뜯어 먹고 사는 거 아니다. 스펙 좋다, 카메라빨, 화면빨보다 중요한 게 어플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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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22 17:58 신고 레브미사카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플빨이 제대로 받칠려면 충분한 스펙도 중요합니다.

    안드로원에서 어플돌린다치고 아무리 평이 좋다고 소문난 어플을 돌렸는데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는다고 하면 그게 어플빨입니까 스펙빨입니까.

    iOS도 그렇습니다.
    아이팟터치 2세대가지고 좋다고 소문난 어플 돌렸더니 실행도 안되고 심지어 다른어플은 버벅이다가 튕기더라구요 ㅎㅎ....

    맘에 드시진 않으시겠지만 포스팅 읽어보고 제 생각을 몇자 적어보고갑니다.

    • 2011.05.22 22:30 신고 눈감기 시워나게  댓글주소  수정/삭제

      당연히 어플빨을 받을려면 스펙빨은 기본이겠죠~

      근데 요새 포스팅이나 광고, 신문기사들이
      기기 리뷰들을 스펙 위주로 하는데,
      좀 아쉬워서요...

      허니콤 기반 태블릿도 사양은 빠방한데
      아직 어플이 후달린다는 게 약점이잖아요.

      태블릿이 어플 없음 진짜 화면 큰 스마트 폰 밖에 안되니까요.

      의견 감사합니다~


참 잊을만하면 나오는 군 가산점 이슈.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국방부는 군 가산점 이슈를 들고 나왔고 여성계는 우려를 표명했다. 이번엔 새로 추가된 요소가 있다면 전국민의 80%가 군가산점 제도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 정도?

군 가산점제는 이미 위헌 판결이 난 사안이다. 그걸 국방부가 굳이 다시 들고 나온 이유는 뭐지? 남녀 분열조장, 인기몰이, 심심해서, 남자들을 위해서, 정의감에 불타서... 또 뭐가 있을까...

사실 헌법에 국방의 의무가 명시되어 있는데 '의무'라는 걸 이행하는 데 나라에서 굳이 뭔가 혜택을 제공해야 할 필요는 없다. 물론 의무를 이행하는 데 불이익이 발생한다면 이를 보상해야 할 필요는 있을 것이고 그 방안 중 하나로 제시하는 것이 군가사점제이다.

군 가산점 부여를 하기로 했다고 치자. 그럼 국방부에서 해야 할 일을 뭐지? 없다. 그냥 법안 발의해서 처음에 좀 주목받고, 이젠 예비역들에게 이런 혜택을 주게 됐다, 그러니 맘 놓고 군대 와라! 하고 더욱 가열차게 홍보에 열을 올리겠지. 아마 국방부 장관이나 이 법안을 주도한 사람은 그 인기를 등에 엎고 정치 진출을 할 수 있으려나?

자기들 예산은 100원도 안 들어가고 생색은 잔뜩 낼 수 있는 참 좋은 법안이 군 가산점제다. 월 7-8만원 주면서 2년을 부려먹고, 제대하면 1년에 몇십시간씩 불러다 헛짓거리 시키면서 그거 가산점 몇 점 준다고 엄청 생색내겠지.

당시 우리나라 정부의 잘못이 크긴 하지만, 일본은 몇 푼 안되는 보상금을 주고 우리나라 식민통치에 대한 보상을 끝냈다고 말한다. 군 가산점도 딱 그 꼴인 것 같다. 돈도 하나 안 드는 점수 몇 점 꼴랑 주고 자기들은 최선을 다 했다고 하겠지.

이미 위헌 판결나서 가망도 없고, 짜증나는 이런 거 말고 좀 쌔끈한 걸로 해봅시다. 그리고 이런 시덥잖은 법때문에 싸우지 말자고.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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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21 17:18 신고 양승훈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간결하게 잘 정리하셨습니다. :)

  2. 2011.05.22 13:04 ㅋㅋ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 식으로 생각지 마시고요~
    그게 시작이라고 생각해줍시다.

    비록, 군가산점이 쓰이는 곳이 한정된 곳이긴 해도,
    그걸 시작으로 다른 곳에서도 형평성차원에서 군전역자에 대한 보상차원의 혜택을 줄 수 잇을테니까요~

    이 땅의 여성들은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또한, 근시안적입니다.
    거기다가 아주 이기적이기까지 합니다.

    ...

    이해까진 어떻게 할 수 있습니다만,
    이 나라, 이 민족... 앞날을 위해선 필요불가결한 선택이라 사료되네요!
    제발 좀 근시안적 시각서 벗어납시다.
    지금, 안 그래도 이 사회가 여성화돼가서 조만간 멸족(!)위기에 처할 거 같구만은 무슨 놈의...
    나참~

    • 2011.05.22 22:33 신고 눈감기 시워나게  댓글주소  수정/삭제

      군가산점제 대신 얘기 되는게,
      군인 월급 현실화 같은게 있는데

      역차별 논란이니, 위헌이니 하는 군가산점제보다
      이런 게 낫지 않나 싶어서요.

      국방부도 맨날 간부 복지만 신경쓰지말고,
      사병들 처우개선에 좀 신경쓰고.

      당장 제가 다시 군대를 간대도,
      (죽기 보다 싫지만............)
      월급 좀 적당히 줘서 휴가나와서
      부모님 손 좀 안 벌리는게
      혜택 받을지도 안 받을지도 모르는 가산점보다 나은 것 같고...

이 글은, "외대학보"에 실었던 글.


  크리스마스가 코앞이다. 크리스마스를 외롭게 보내지 않기 위해서, 또는 시린 옆구리를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 싱글 남녀들은 서로의 짝지를 찾아 헤맨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미 좋은 상대를 찾아 그 마음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 중이기도 하다. 또 어떤 남녀는 오랜 친구관계를 청산하고 연인으로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여기서 얘기하고 싶은 건 바로 이 ‘친구에서 연인으로’갈 커플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 쌍의 남녀가 있다. 둘은 오랜시간을 친구로 함께 했다. 어느날인가부터 남자는 친구가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 남자는 고민한다. 고백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경제학에서 인간은 합리적이라고 가정한다. 합리적인 인간은 어떠한 행동을 하기 전에 그 행동에 따르는 비용과 효용을 따져 보고 효용이 비용을 초과할 때에만 해당 행위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불확실성이 존재하기에 이러한 의사결정엔 확률이란 게 끼어들게 된다. 즉, 합리적 의사결정 주체인 인간은 행동의 모든 가능한 결과에 대해서 평균해서 가장 높은 기대효용을 낳는 행동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비슷한 논리는 법경제학에서도 보인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 교수는 범죄로부터 얻는 기대 이익이 기대 비용보다 클 때 범죄가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기대 비용은 범죄를 저질렀을 때 받게 될 벌에 벌을 받을 확률을 곱한 값이다. 반대로 기대 이익은 범죄를 저지름으로 인해 얻게 될 이익에 이를 얻을 수 있는 확률을 곱한 값이다. 비용보다 이익이 클 때 범죄를 저지른다. 경제학적으로 보자면 대단히 합리적인 행위이다.


( 어렵다는 건... 나도 안다. )


  본론으로 돌아와서, 고백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남자가 합리적이라면 이 남자는 고백을 함으로 인한 기대이익이 기대비용보다 클때 고백을 한다. 이 남자가 고백을 하지 않는다면? 이 남자는 기대비용을 기대이익보다 크게 평가한 것이다. 기대비용이 기대이익보다 크다는 것은, 고백이 성공할 확률을 지나치게 작게 보았다든지, 또는 고백을 함으로써 잃게 되는 것, 즉 친구로서의 관계 상실을 크게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 측면에서 보자면 고백을 함으로써 얻게될 이익을 작게 평가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고백을 하지 못하는 남자는, 확률을 대단히 비관적으로 예측하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효용을 친구관계를 잃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보다 크다고 보는 사람일 가능성도 있다.

  결론은, 고백하지 않는 남자는 상대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는 것. 아무리 확률을 비관적으로 예측한다고 해도 사랑하는 마음이 충분히 크다면 기대이익이 기대비용을 모두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지 않을까?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세상은 0과 1사이의 불확실성의 세계에 존재한다. Risk Taking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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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인가, '런닝 맨'에 대한 포스팅을 하나 했습니다. 전 유재석 빠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참...어쩌다보니 유재석을 좋아하게 되어버렸는데. 기대를 갖고 보았던 '런닝 는 글을 썼었는데맨'이 쪼~옴 부실하게 재미있길래 뭐라뭐라 하는 글을 썼었는데, 어찌어찌 이게 Daum VIEW BEST에 가더니, 3일째 계속 이걸로만 블로그에 사람들이 들어오는군요. 다른 글들은 완전히 씹히는데...

촛불이후로, 다음 메인에 노출되는 포스팅들이 주로 연예/연애 쪽이던데, 확실히 이런게 인기가 있군요. 그 전에도 썼던 것 중에 그나마 조회수가 있던게 Ra.D랑 이소라 신보 발매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연예 아니면 관심 받기 힘든건가 ㅡ.ㅡ

이러고보면, 파워블로거라 불리는 분들이 새삼 대단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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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일종의 모임을 하려고 제가 다니고 있는 대학교 강의실을 빌렸습니다. 일주일 전에 미리 다음주 월수금 11시부터 5시까지 강의실 대여를 신청했습니다. 계절학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던지라 가능할까 했었는데 가능하더군요.

모임날인 월요일, 배정된 강의실로 갔더니 공부하고 있는 학생분들이 계셨습니다. 저희가 빌려서 사용하려고 한다고 말씀드리니 언제까지 빌렸냐고 하더군요. 5시까지 빌렸다고 하니, 2시부터 여기서 시험이라고 말하면서 나가셨습니다. 음? 이게 뭔일? 알아보니 원래 수업은 없는 곳이지만 사이버대학에서 시험장소로 사용한다고 홈페이지에 공지까지 했더라구요. 

어쩌나 싶어 다시 담당부서를 찾아가니 저희가 빌린 건 맞고 원래 쓰셔야 하는 건 맞지만 그 쪽에서 시험을 봐야하니 비켜주시면 좋겠다고. 강의실 변경을 문의하니 당일변경은 어렵다고. 휴..... 사실 사이버대학에서 강의실 사용을 하려 했으면 학교측과 미리 조율을 해서 애초에 대여가 안된다고 하던지, 다른 쪽으로 대여을 해줘야지 이게 뭡니까.

여튼 할 수 없이 시험시간 전에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끝나고 다시 담당부서를 찾아가서 수요일날도 시험인 것 같으니 강의실 바꿔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담당자분이 빈 곳을 체크해보시고, 사이버대학 측과 통화도 해 보시더니 강의실을 변경해주셨습니다. 잘 됐구나,,, 하고 집에 왔습니다.

푹 자고 일어나 아침에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부재중 전화한통과 문자가 와 있었는데 강의실 담당자분이 전화했던거고, 문자내용은 '내일(화) 9시부터 13시까지 강의실 사용하시고 확인증은 내일 아침에 찾아가'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거 참,,, 결국 수요일(원래 제가 쓰자고 했던 날)이 사이버대학측에서 사용해야하니 안 된다는 건데, 그걸 밤 늦게 연락해서 당장 내일 오전에 사용하라고 하면,,, 그게 되겠습니까. 저희가 다 백수들이라 아무때나 모임을 할 것도 아니고 각자 약속시간을 정해서 이때 모이자 해서 정한 건데 학교측에서 날짜, 시간을 아무렇게나 바꿔서 잡아주다니요. 결국 강의실 대여 해줬으니 됐지? 이거 아닙니까.

강의실 대여 업무 담당하신분도 학생분이셨는데, 이분이 가진 권한도 없을거고, 사이버대학측에서 말도 안들으니 혼자 고심고심하다 그러신건가본데, 일처리를 이렇게 했어야하나 하는 생각입니다.

학교행정직원분들 보시면 친절하신분도 계시지만, 도대체가 말이 안 통하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교내 알바를 해보면 도대체 하는 일이 뭔지 알 수 없는 땡보직원 분들도 계시고. 사이버대학과 본교간 강의실대여같은 간단한 사실로도 서로 커뮤니케이션 하지 못하는 걸 보면, 아주,,, 한숨이 나옵니다. 포스팅은 이번 일만 했지만 그간 답답한 게 한두번도 아니고.

교수님들이 요구하면 정식절차 다 무시하고 다 받아주면서(이것도 참 그런게, 강사분들 요구는 거의 쌩까는데 직급있으신 교수님들 요구는 허가 안나는거 못 봤습니다) 학생들 요구는 정식절차 밟아서 승인까지 받아도 갑자기 꽝나고.

제발~ 학생들 좀 생각해주세요. 저도 예의없게 아버지뻘 되는 분들께 대들고 싶지 않다구요.
Posted by 눈감기 시워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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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ON CORPORATION | NIKON D3 | Manual | Pattern | 1/500sec | F/3.5 | -0.33 EV | 400.0mm | ISO-1000 | Flash did not fire | 2009:12:29 15:19:49
CL (이채린) / 국내가수
출생 1991년 2월 26일
신체 키16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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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이라는 가수가 있고, 그 가수가 미성년잔데, 방송에서 노출이 과도한 의상을 입고나와, '선정성'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게 문제의 핵심,,, 맞나?

이게 문제가 되는 건가 싶다. 이전에도 뭐 여고생이 섹시화보를 찍었네, 여고생이 키스신을 찍었네, 여고생 가수들의 의상이 지나치게 선정적이네, 얘기가 많았다. 그런데, 이게 왜 문제냔 거다.

세대가 어쩌다보니 새파랗게 어린 것들까지 옷을 벗고 그러느냐...이래서 문제인건지, 아님, 의식이 덜 성숙한 여고생들을 노출시켜 돈을 벌려고 하는 기획사들이 문제인건지, 예쁘고 어린 여자애들이 노출을 해주니 보기는 좋은데 죄 짓고 있는 것 같아서 찜찜해서 문제인건지... 뭐가 문제냔 거다.

미성년자는 노출을 하면 안 되느냐? 왜? 미성년자는 자의식이 충분히 성장하지 않았으니까, 이렇게 노출하는게 좋은 건지, 안 좋은건지 판단할 수 없어서 성적으로 착취당하고 상업적으로 이용당할 수 있으니까 자제 시켜야 한다?91년생이면.. 이제 내년에 대학 들어오는 신입생들 나이 아닌가? 노출을 해도 괜찮을려면 여기서 나이를 얼마나 더 먹어야 하는건데? 얘들이 아직 제 옷차림도 제대로 못할 그런 정도의 얘들로 밖에 안 보이나? 그럼 그렇게 사리분별도 못하는 어린애들을 무대에 올리고 노래부르게 하고, 춤추게 하는 건 간난애기 장기자랑이 아니라면 하면 안되는거지. 더 크면 오니라...하고.

소녀시대의 각선미춤에 열광하고, 카라의 엉덩이춤에 환장하면서 미성년자의 노출의상을 문제삼는 거, 아주 가증스럽다. '섹시'컨셉의 여걸그룹이 넘쳐나는데, 미성년자 노출 선정성 논란?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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