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의 세계’에서 사람들이 살던 방법
“서구식 재판은 어떤 일이 일어났고 누가 행위를 했느냐를 따지지만, 나바호의 화해 과정은 그 사건의 결과를 따진다. 누가 상처를 받았느냐? 피해자는 그 사건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제까지의 세계, 제러드 다이아몬드, p154]
미셸 푸코, 움베르토 에코 마찬가지로 이름에서 괜스레 멋스러움이 풍겨나오는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최신작.
우리는 아마존, 아프리카 등지에 사는 원시부족 - 이게 정치적으로 올바른 용어인지는 자신이 없다 - 의 모습을 그저 호기심으로 바라본다. 문화적 다양성을 이야기하고 문명의 진보가 단선적이지 않음을 말하지만 현대문명을 이룬 우리가 그들보다 우수하다는 생각을 내재화하고 있지는 않은가?
다이아몬드 교수는 책 전반에 걸쳐 ‘어제까지의 세계’에서 사는 부족사회의 모습을 묘사한다. 우리가 보기에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그 사회가 실제로는 그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고민의 결과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현대국가에선 구성원들간 분쟁이 일어났을 때 이해당사자들의 시시비비를 가리는데 힘쓴다. “재판에서 국가의 최우선 관심사는 잘잘못을 가리는 것이다.” “근원적인 사건과 그로 인한 소송 과정은 양쪽 모두에게 감정의 앙금을 남기지만, 국가는 그런 감정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제까지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에겐 감정의 회복이 중요하다. 수백만이 모여사는 도시에서 분쟁 당사자들은 생면부지의 남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부족사회에서 분쟁을 겪는 상대는 평생을 마주하며 살아온 사람이고 앞으로도 다시 평생을 마주해야 하는 사람이다. 이들에겐 분쟁의 해결, 그 뒤에 남는 감정의 앙금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그들의 해결책은 시가닝 오래 걸린다. 공평해 보이지 않는다. 피해액에 따라 보상하지 않고 감정에 상처를 입은 만큼 보상한다. 때로는 관계의 회복을 위해 피해자가 보상하기도 한다. 분쟁의 해결을 위해 온 부족이 참여한다.
분명히 얽히고 설켜 ‘남’들과 살아가는 여기 남양주에서 저렇게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가족의 문제까지 법정으로 가져가서야 해결을 보고, 재판이 끝나고 나면 평생을 원수로 지내는 우리와 저들을 비교해보면 저렇게 살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은 해봐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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