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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uffingtonpost.com/jim-wallis/will-politicians-listen-t_b_898773.html

허핑턴 포스트에 올라온 짐 월리스의 글이다.
짐 월리스는 미국 기독교에서 진보계열을 대표하는 목사로 알려졌는데, <회심>이나 <예수의 정치학>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Jim Wallis - World Economic Forum Annual Meeting Davos 2010
Jim Wallis - World Economic Forum Annual Meeting Davos 2010 by World Economic Forum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종교인들의 정치 참여는 늘상 문제가 되는데
짐 월리스 역시 그런 비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의 주장과 운동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
그가 정치 참여의 명분을 언제나 기독교의 도덕적 가치에 두기 때문이다.

정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구제.
대부분의 종교가 중요시 여기는 가치들이고 이는 기독교 역시 마찬가지다.
짐 월리스는 언제나 위의 가치들에 근거하여 나의 입장은 이렇다~ 이런 운동을 하자~ 동참해달라~ 호소한다.
같은 종교를 갖고 있더라도 그 정치적 입장이나 선호는 다를 수 있으나
기독교인이면 마땅히 중시해야 할 가치들이 있기 마련이다.
한국의 기독교가 정치 참여와 관련하여 비판만 받는 이유는
그들의 정치 참여가 그들의 종교적 가치와는 무관한 이해 집단으로서만 기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링크를 건 기사는
미국의 예산 삭감과 관련하여
예산 삭감의 주 희생자가 저소득층 사람들임을 인식하고
로비조차 하지 못하는 그들을 대신해 목사들이 목소리를 내고 국회의원들에게 편지를 쓰자는 내용이다.
이것 또한 그들에게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지 않겠나라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그가 내세우는 도덕적 근거는 명확하다.
기독교는 약자의 편에 서야하고, 예산 삭감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희생을 요구한다. 따라서 예산 삭감에 반대한다.

예산삭감의 옳고 그름을 떠나(정치적/경제적 계산에 따른)
종교인이라면 분명 신앙적 신념과 도덕적 가치에 따라 정치적 목소리를 내야지
그들이 경제적/정치적 분석에 따라, 이익에 따라 목소리를 내선 안 된다.
이런 일들을 할 단체들은 많이 있다.
사회가 그들에게 바라는 것도 그게 아니다.

정의. 양선. 사랑. 약자를 대변함.
연일 뉴스에 오르 내리는 기독교계의 행보에서 이 같은 가치들을 읽을 수 없음이...
Posted by 눈감기 시워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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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2.16 10:11 장동만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종교인의 현실 참여


    “우리는 (세상의 잘못된 것에 대해) ‘No!’ 라고 말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 ‘복음의 기쁨 (Evangell Gaudium)‘에서

    카톨릭 전주 교구 박 창신 신부의 ‘시국 미사’가 일파만파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정치 사회적으론 종교인의 정치적 발언 내지 행위의 타당성 정당성을 에워싼 논란이 뜨겁고, 학계에선 새삼 정교 분리 (statecraft vs. soulcraft)의 역사를 고찰하는가 하면, 카톨릭 내부에선 교리(서) 해석이 분분하다.

    이 모두가 근본적인 시각이 다르고, 그 문제 접근 방식이 달라 마치 백가쟁명 양상인데, 나로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종교인, 특히 목회자 (신부/목사)의 현실 참여 문제에 대해 평소 생각하던 바를 좀 적어 보고저 한다.

    종교 (신앙) 인으로선 인간 만사 모두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다. 인간 생명의 존립을 좌지우지하는 현실적인 정치 경제도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그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은 하나님의 뜻대로 정의롭고 공평하고 선(善)하게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번 박 신부의 ‘시국 미사’ 파동에 대해 서울 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는 이렇게 말한다. “정치 참여는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이 임무를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평신도의 소명 으로 (카톨릭 교리서는) 강조하고 있다.”
    “사제들은 먼저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와 신자들의 고통과 짐을 질 수 있어야 한다”

    정치 참여 내지 정치 행동이 평신도들에게 소명이라면 사제에게는? 그리고
    사제들이 신자들의 고통과 짐을 함께 질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비교인 (非敎人)에겐 많은 의문을 자아낸다. 어딘가 앞뒤가 안 맞는 논리적인 모순을 느낀다.

    브라질 돔 헬더 까마라 대 주교는 이렇게 말한다.
    “가난한 사람에게 빵을 주면 그들은 나를 성인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내가 가난한 사람들이 왜 빵이 없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나를 공산주의자라고 한다.
    (When I give food to the poor, they call me a saint.
    When I ask why the poor have no food, they call me a communist.)”
    자비를 베푸는 것은 종교 행위이고, ‘가난의 이유’를 묻는 것은 곧 정치 행위가 된다? 참 아이로닉한 이야기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또 강론한다.
    “지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Listen to the voice of the earth)”
    “지상의 목소리”가 무엇인가?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제 아닌가.
    “귀를 기울여라.” 곧 거기에 관심을 갖고 행동라는 말 아닌가.

    보수 전통 종교, 많은 보수 주의 목회자들은 교회 안에서 개인의 (영혼) 구원만을 설교한다. 인간의 하루 하루 생존을 좌지우지하는 정치/경제 문제는 그들이 간여할 바가 아니란다. 그것들은 정치 경제하는 사람들의 몫, 정교는 분리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묻고 싶어진다.

    그렇다면 정치 경제가 잘못 돌아갈 때, 그로 인해 숱한 생명이 고통을 받을 때,
    ‘하나님 듯’을 이 땅에 펼친다는 그들로서 이를 외면, 오불관언 해도 좋을 것인가.
    그래서는 안될 줄로 안다.

    그들은 누구보다 앞서 하나님 정의의 깃발을 높이 쳐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 땅의 불의, 죄악, 불공평, 불선 (不善)을 증언하고 규탄해야 한다. 이는 한갓 정치(적) 발언 / 행위가 아닌, 곧 ‘하나님 말씀’의 대변이자 실천이며 그들의 소명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또 이는 한 생명을 구원하는 소선 (小善)을 뛰어넘어 다수를 함께 구원하는 공동선 (共同善)의 길이기 때문이다.

    <장동만> <12/01/13>

    P.S. 첨부한 글, ‘잉여 청춘이여,
    Think Global!”

    관심 있으신 분, 한 번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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